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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그루브 제작기

또는 플레이할 때 냉정을 잃지 않고 그루브를 느끼는 방법을 어떻게 배웠는지

개발자 블로그글쓴이SMALL BABY PAN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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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과 같은 상황을 가정해보겠습니다. 공격로에서 만사태평하게 거닐다가 갑자기 번쩍이는 영감과 함께 ‘리그 오브 레전드에는 영유아 스킨 시리즈가 필요하다’라는 생각이 떠오릅니다.

상상의 나래를 활짝 펼치고 힘껏 날아오르기 시작합니다. 신생아용 모빌에 매달린 채 하늘에서 하강하는 아기 엘리스, 곰 인형 묘목을 던지는 마오카이, 강펀치를 날릴 때 기내에 있는 아기처럼 소리를 지르는 세트가 머릿속에 아른거립니다.

모든 챔피언이 아기인 테마처럼 착상이 아무리 기발할지라도 실제로 만들어지는 스킨 테마는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이어터들은 머릿속으로 그린 스킨이 우리가 너무나도 사랑하는 게임에 등장할 수 있기를 바라며 기상천외한 발상을 끊임없이 생각해냅니다. 그래도 라이엇에서는 언제나 기회가 있습니다. 창작 업무와 무관한 직무의 라이어터에게도 자신의 생각을 협곡에서 구현할 기회가 주어집니다.

다다익선

라이엇에는 분기별 테마 제안 발표회(Thematic Pitch Quarterly, 이하 TPQ)라는 제도가 있습니다. 분기마다 스킨 테마를 제안할 기회가 라이어터들에게 주어지며 선정된 테마는 리그 오브 레전드의 개인화(Personalization), 몰입(Immersion), 표현(Expression) 팀(줄여서 PIE 팀 또는 스킨 팀)이 실제 스킨으로 만듭니다.

PIE 팀 자체에도 창의력이 넘쳐흐르지만, TPQ를 진행하게 된 핵심 계기는 훌륭한 아이디어가 어디에서나 나올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PIE 팀은 소속 팀과 상관없이 어떤 라이어터든 테마를 제안할 수 있게 하기로 했습니다.

전직 PIE 팀 제작 리드 앰브리엘 “Eggo McLego” 아미 님은 “요새 출시하는 스킨은 PIE 팀에서 아이디어를 낸 사람이 TPQ 절차를 거쳤든 다른 팀이나 다른 지역의 오피스에서 생각해냈든 대부분 TPQ를 거쳐서 나옵니다. 우리의 생각은 자신의 삶과 그동안 경험한 미디어, 예술, 패션 혹은 기타 영감을 주는 것에 구애받기 마련입니다. TPQ는 PIE 팀을 초월해 라이엇 전체에 걸쳐 훨씬 더 많은 경험과 관점을 살펴볼 수 있게 해줍니다”라고 말합니다.

전직 테마 개발 프로듀서 칼 “Riot LoveStrut” 아바드 님은 가장자리 효과라는 생태학 개념이 TPQ의 바탕에 있었다고 합니다. 가장자리 효과는 다양한 생물의 서식지와 환경이 교차하는 곳에서 나타나는 현상을 의미합니다.

Riot LoveStrut 님은 “중국에 있는 팀이나 고객지원 또는 품질 보증 담당자와 PIE 팀의 교차점에서는 어떤 생각이 나올지 보고 싶었습니다. 더 다양한 생각이 나오기를 바랐죠. 저는 상상조차 못 했을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라이엇 곳곳에 있었으니 다행히 결실이 있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제안이 일차적으로 이루어진 후 테마 개발 팀이 나서서 제안을 처음 구상한 팀이 테마를 한 단계(혹은 열 단계) 더 끌어올릴 수 있도록 세계관, 서사 기획, 컨셉 아트 관련 작업을 거들어줍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고 나면 제안을 구상한 팀은 완전한 발표 자료를 손에 넣게 됩니다.

그다음에는 제안을 발표하기만 하면 되는데... 발표는 회사 전체가 지켜보는 앞에서 이루어집니다.

전사 차원의 발표회에서 나온 제안을 살펴본 후 라이어터들은 마음에 드는 테마에 투표를 합니다. 하지만 라이어터의 마음에 쏙 드는 스킨 시리즈 제안이라고 전 세계의 플레이어들도 좋아하리라는 법은 없습니다. 그래서 PIE 팀은 사전에 설문 조사와 다른 데이터를 살펴보며 날카롭고 어두운 분위기부터 경쾌하고 엉뚱한 분위기와 우아하고 아름다운 분위기까지, 어떤 유형의 테마가 플레이어의 공감을 자아낼지 더 자세히 파악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팀에서 결정을 내릴 때 데이터에만 목매달지는 않습니다. 데이터는 유용한 도구의 역할을 할 뿐입니다.

Eggo McLego 님은 “테스트에서는 결과가 좋지 않지만, 제안한 팀의 열정이 대단하고 세계관의 매력이 아직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들게 하는 테마가 있습니다. 무리수 같았음에도 팀이 열정적으로 임하며 아트와 실제로 구현하는 작업에 모든 정성을 쏟아부은 덕분에 특별한 결과로 이어질 때가 많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특히 어려운 부분은 제안을 추리는 일입니다. 제안을 진행하지 않기로 하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미 개발 중인 테마와 비슷하거나 챔피언 명확성을 저해하는 제안이거나 현재로서 기술적으로 구현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Riot LoveStrut 님은 “제안의 내용과 열정이 무척 마음에 들지만, 이러이러한 이유로 지금은 안 된다고 말해야 할 때가 가장 힘듭니다. 그렇게 되더라도 라이엇에는 화내거나 발끈하는 사람이 없어서 좋습니다. 모두 너그럽게 이해하고 훌훌 털어 버린 후 다음에 다시 도전하려고 하죠”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을 끝까지 통과한 제안은 영혼의 꽃, 전설의 산수화, 동물특공대 등 리그 오브 레전드에서 가장 인상 깊고 인기 많은 스킨 시리즈의 반열에 오른 결과물을 낳았습니다.

TPQ의 산물 중 지구를 초월할 정도로 멋진 테마이자 디스코의 향연인 우주 그루브 역시 다름없습니다.

110%로 끌어올리기

시초는 오스카 “gay lil frog” 베가 님과 닐 “Riot diet chola” 추아 님의 제안이었습니다. 둘은 각각 컨셉 아트와 콘텐츠 제작이라는 별개의 영역에 몸담고 있지만, 비슷한 제안을 했습니다. 둘 다 그루비한 디스코풍 모습에 공상과학 느낌을 가미한 테마였습니다.

둘은 테마를 제안한 경험이 없었지만, TPQ 제도 덕분에 우주의 뜻에 의한 협업이 이루어질 길이 열렸습니다. 콘텐츠 프로듀서인 Riot diet chola 님은 당시 라이엇 내에서 창의력을 발휘할 길을 찾고 있었으며 컨셉 아티스트인 gay lil frog 님은 자신이 각별히 여기는 신바람난 질리언이 더욱더 그루비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했습니다.

Riot diet chola 님과 gay lil frog 님이 만든 발표 자료의 첫 슬라이드

gay lil frog 님은 “저는 항상 복고미래주의를 좋아했으며 특히 1960년대와 20세기 중반의 복고미래주의에 매력을 느꼈습니다. 게다가 리그 오브 레전드에서 선보인 적이 없는 느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당시에는 가벼운 공상과학 스킨이 많지 않았습니다. 전부 매우 날카로우며 어둡고 로봇 같았죠. 공상과학의 색다른 면을 보여주기에 좋은 방향 같았습니다”라고 말합니다.

라이어터 2명 이상이 비슷한 제안을 하면 힘을 합쳐 하나의 초강력 팀을 결성하고 각 제안의 최고 장점만을 모아 짬뽕합니다. 그래서 gay lil frog 님과 Riot diet chola 님은 제안을 합치고 테마 개발 팀과 협력하며 모든 라이어터가 초대받는 회의에서 발표할 자료를 완성했습니다.

테마 개발 과정 중 보는 사람마다 입을 딱 벌어지게 한 스킨 컨셉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 주인공은 우주 그루브 나서스였습니다.

Riot diet chola 님은 “나서스를 봤을 때가 모든 걸 마구잡이로 증폭하기 시작한 순간이었던 듯합니다. 하는 김에 엉뚱함을 아예 1,000%로 끌어올려 밀어붙여야겠다고 생각하게 만든 중요한 순간이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그렇게 했습니다. 장사 같은 로봇을 조종하는 꼬마 멍멍이인 우주 그루브 나서스를 확정함에 따라 엉뚱함의 극치를 펼칠 환경이 마련되었습니다.

우선 나서스의 설정은 강아지 행성의 지도자로 정했습니다. 강아지 행성에는 당연히 강아지들이 살고 있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강아지들에게는 당연히 직업이 있어야 하겠죠. 강아지 행성에는 엔지니어, 현장 연구원, 위생병 등 다양한 일을 하는 강아지들이 삽니다.

강아지 행성이 있으면 고양이 행성이 있어야 합니다. 블리츠크랭크의 전설급 스킨에 고양이 행성을 수호하는 용맹한 전사들이 등장합니다. 블리츠와 크랭크는 강력한 로봇을 활용해 춤 실력을 겨루는 엄청난 대결에서 나서스를 꺾고 강아지 행성을 점령하고자 합니다.

재미있는 사실: 블리츠와 크랭크의 모습과 성격은 gay lil frog 님의 고양이인 와이파이와 존 보비를 바탕으로 만들었습니다.

리그 오브 레전드에서 영생하게 된 와이파이(좌측)와 존 보비(우측)

테마를 개발하며 이제 우주 그루브를 대표하는 특징으로 자리 잡은 부드럽고 동그란 모양과 밝은 색, 장난스러운 시각 효과 등을 강조했습니다. 또한 우주 그루브 스킨 대부분에 등장하는 사랑스러운 ‘부기’(사미라의 피스와 찡긋, 럭스의 바니)들을 추가해 세계관에 명랑함과 발랄함을 더하는 등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요소를 추가했습니다.

영웅과 악당, 무기, 심지어는 댄스 플로어와 디스코 볼까지 갖춘 우주선 등 우주 그루브 캐릭터들이 사는 세계를 통째로 만들어냈습니다.

gay lil frog 님은 “무언가를 제쳐두는 일은 절대 없었습니다. 아무리 엉뚱한 생각이든 일단 시도해보자는 태도로 전부 채택했습니다. 우주 그루브 작업을 하며 정말 좋았던 이유는 테마를 기획할 때 모두가 전심전력했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합니다.

또한 테마 개발 팀은 우주 그루브 세계관 속 ‘힘의 원천’을 찾아야 했습니다. 이는 테마 개발 과정에서 중요한 단계이며 이때 스킨 세계관 속의 챔피언이 어디에서 힘을 얻는지 정합니다.

이제... ‘그루브’를 살펴볼 시간입니다.

그루브

우주 그루브 세계관에서 힘은 말 그대로 그루브, 즉 음악 자체에서 나옵니다.

음악, 정확히는 악의 세력을 막아내고 좋은 바이브를 퍼뜨리는 디스코가 세계관의 원동력입니다. 작년의 우주 그루브 이벤트를 기억하시는 분은 알겠지만, 그루브와 험악한 바이브가 대립하는 설정입니다. 우주 그루브 세계관에서는 악당 리산드라가 험악한 바이브를 확산하고 세계에서 디스코를 없애버리려고 합니다.

우주 그루브의 세계는 근본적으로 음악이 전부입니다. 그루브를 가미해야 한다면 당연히 전능한 라이엇 뮤직 팀을 불러야 하겠죠?

작곡가 브렌던 “GravityBW” 윌리엄스 님은 “디스코와 복고풍 공상과학 음악을 재미있게 조합하는 작업이 핵심이었습니다. 하지만 실제 작업은 훨씬 더 복잡했으며 만족스러운 균형을 찾기까지 큰 노력이 필요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GravityBW 님은 시대별로 다양한 디스코의 특징에서 영감을 얻었습니다. 70년대 디스코의 호른 편곡과 현악기 및 화음 활용, 80년대 디스코의 복고풍 신시사이저와 드럼 소리, 2000년대 초 EDM의 영향을 받은 일렉트로닉 디스코, 현재 팝 디스코의 현대적인 느낌과 최신식 프로듀싱 및 믹싱 접근법 등을 참고했습니다.

이어서 “다른 장르에서도 많은 영감을 받았습니다. 고전 공상과학 주제곡을 참고해 선율과 화음, 전자 악기인 테레민 같은 소리가 나는 신시사이저를 활용했습니다. 그루브가 강한 중간 부분(라이엇 작곡가로서 드디어 슬랩 베이스를 사용할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죠!)을 만들 때는 클래식 펑크(funk) 음악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70년대 말과 80년대 초에 의외로 흔했던 공상과학과 디스코의 조합을 참고해 만든 재미있는 편곡도 여러 가지를 썼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우주 그루브 테마에서 음악이 차지하는 부분이 워낙 크니 나머지 음향 팀과의 논의를 평소보다 훨씬 더 일찍 시작했습니다. GravityBW 님은 애니메이션 팀이 동작을 음악에 맞출 수 있도록 일찌감치 우주 그루브 스킨 테마의 템포를 정확하게 확정하기까지 했습니다. 또한 스킨 팀이 구축한 ‘기본 음향 효과’를 활용하기도 했습니다. (어떻게 활용했는지 궁금하시면 곡이 피날레로 접어드는 3:26부터 유심히 들어보기 바랍니다.)

GravityBW 님은 “보통 스킨 시리즈를 만들 때보다 사운드 디자이너들과 훨씬 더 긴밀한 소통이 이루어졌습니다. 작곡에 앞서 음악의 역할과 느낌을 다 같이 논의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우주 그루브의 무사태평함과 분위기가 리그 오브 레전드 세계에서 독특했다는 점이 GravityBW 님의 마음에 쏙 들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스킨 시리즈의 분위기가 진지하지 않아서 우주 그루브의 음악을 작곡하는 경험이 특히 좋았습니다. 보통은 리그 오브 레전드에 적합하지 않은 B급 혹은 유치한 느낌이 지나치게 강해질까 봐 걱정하지 않으면서 작업할 수 있었으니까요”라고 말합니다.

결국에는 한 라이어터의 몽상이 오래가는 테마가 되고 라이엇의 창작 팀에 온갖 새로운 영감을 줄 수 있습니다.

gay lil frog 님은 “우주 그루브 테마 제안은 정말 엄청났습니다. 개발자들이 즐기면서 테마를 발전시키는 모습을 보는 게 TPQ 과정에서 가장 좋은 부분이었다고 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개발자들은 아이디어가 나오는 즉시 구현하는 방법을 1,000가지나 생각해내곤 했습니다. 정말 들뜬 마음으로 스킨을 실현하고자 했죠. 우주 그루브 덕분에 팀의 활력이 재충전되어서 특히 좋았습니다. 극도로 진지하며 어둡고 날카로운 테마를 많이 만들던 시절이라서 우주 그루브는 신선하게 다가왔습니다. 엉뚱할수록 좋으니 참지 않고 뭐든지 시도해보자는 분위기였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번 달 새로운 스킨과 함께 그루브가 계속 이어집니다. 지금은 아주 곧 중요한 악당(과 이 악당의 험악한 바이브에 맞설 수 있도록 많은 부기를 거느린 영웅)을 보게 되실 거라는 이야기만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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